[수필]박춘근 「충무로 산조散調」

by 임정호 2010-09-07 12:08:58

 충무로 산조散調

- 박 춘 근 -

좋으나 나쁘나, 좌우지간 불문하고 충무로에 둥지를 틀고 머문 지도 어느덧 30년이나 되었다.
누군 내게 이렇게 묻는다.
“박형 충무로에서 뭐해요.”
“영화를 만든다. 녹음만 끝나면 된다.”
이렇게 이야기 하면, 그 친구는
“무슨 영화이냐” 고 또 캐묻는다. 귀찮기도 하겠지만 대답을 또 아니 할 수가 없어 「용팔이 시리즈」인데 제목은 ‘돌아온 용팔이’ 제 3탄이라 한다.
그러면, 그제야 나의 이야기가 찐한 농담인 줄 알고 “피씩” 웃는다. 그 소리가 전화통을 요란스러우니 나도 덩달아 “허허” 웃지 않을 수 없다.
그런들, 내가 충무로에서 ‘영화를 만든다’는 이야기가 전혀 근거 없거나 막무가내씩 엉터리만은 아니다.
5년 전만해도 영화인 몇 분이 내게 자주 전화를 해서는 영화를 만들자고 채촉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달콤한 유혹과 회유도 있었던 것, 역시 사실이다.
‘꽃불’이란 영화를 만들자고 부추긴 것도 엊그제인 것만 같은데……. 이젠 그런 이야기, 귀찮기도 했던 그 전화마저도 끊긴지 오래이다.
당시에는 누구나 이름만 들어도 다 알만한 유명한 중견 감독 K씨가 메가폰을 잡기로 하고 시나리오 검토도 다 끝났다. 그런데 K감독의 예기치 않은 신상문제로 인하여 하루아침에 풍비박산되니, 영영 영화제작은 우리의 주변에서 홀연히 사라진 것이다.
‘꽃불’의 주요내용은 독립 운동가이며, 언론인, 교육자, 종교인이신 한서 남궁억 선생의 일대기一代記를 애국적, 교육적, 시대적……. 그 미래지향적 차원에서 영화화하기로 한 뜻있는 기획이었다.
‘꽃’은 곧 대한민국의 위대한 나라꽃國花‘무궁화’를 말함이며,‘불’은 겨레의 혼魂, 배달겨레의 영원한 정수인 ‘무궁화 정신’을 항일구국 독립운동으로 승화시킨 한서 남궁억 선생의 애국애족의 정신을, 아우러 볼 때 ‘불꽃같은 구국의 혼’을 일컬음이다.
소한, 대한이 지나고 입춘立春이 내일이건만 충무로에는 아직도 스산한 바람만이 불어온다.
지난 80년대 인연을 맺은 벚님들은 벌써 하나 둘, 이곳을 떠난 지 오래이다. 빈자리에는 허망과 공허만이 쓸쓸히 남아 맴돈다.
그날, 그때에는 저마다 열정과 용기로서 이 세상을 위해서 무언가를 해내자고 다짐한 우리들이 아니었던가. 맹세마저도 어찌 한두 번 이련가!
떠난 이 중 더러는 낙향한지 오래이고, 또 어떤 이는 그때 그 시절의 미련을 떨치지 못해 지금도 이 거리 저 골목 충무로의 뒤안길을 온종일 헤매고 있다.

명보극장에서 충무로 지하철역까지에는 가로수마저 어제의 흔적을 벗어던지고 흐른 세월만큼이나 우리네의 변한 모습만큼 바뀌고 또 변하였다.
이른 봄 이팝나무 가로수의 꽃이 유난히도 하얗게 나부낀다. 소슬바람에 휘날리는 꽃잎 따라 우리의 삶도 하나, 둘 생각의 굴레에서 자꾸만 자꾸만 멀어져 간다.
나는 오늘도 이 거리 충무로에서 그날 그때 만난 고마운 내 친구의 이름을 불러본다. 그 고운 얼굴을 한없이 떠올린다.
서러워 돌아서는 나, 누구도 알지 못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어둠속으로 홀연히 숨어 버린다. 깜박깜박 졸고 있는 수은등불 사이로 흘러간 노래 ‘나그네 설움’이 끊길 듯 끊길 듯 이어지는 것이 어쩌면 꼭 내 모습을 고스란히 일러주는 것만 같다.


출      처 : 문학신문(www.munhaknews.net)
기사원문 : http://www.munhaknews.net/news/service/article/mess_01.asp?P_Index=102&fl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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