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산업혁명, 그러나 익숙한 미래…“본질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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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회 KT 차장
4차산업혁명이 주는 용어의 전달성은 매우 강렬하게 느껴진다. 용어가 주는 급진성 때문인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속도 또한 빠르다. 우리가 지나온 산업혁명을 긍정 혹은 부정의 의미로 이야기하는 것은 그동안의 기술 변화를 통해 인류의 삶과 생활문화의 급격한 변화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아직 실체도 불분명한 4차산업혁명이라는 용어를 통해 인류는 어떤 변화에 놓이는가가 큰 이슈일 것이다. 1차 산업혁명은  증기기관, 2차 산업혁명은 전기의 발견에 따른 변화 3차 산업 혁명은 정보통신 혁명에 이어 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을 포함한 부분으로 이야기하곤 한다. 4차산업혁명으로 불 꺼진 공장에서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자동기계와 인간형 로봇이 일상화 될 미래를 생각하면 익숙한 공상 과학소설처럼 느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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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Wikipedia

그렇다면 지금 왜 4차 산업혁명이란 용어에 사람들은 주목하고 있고 현재 우리는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 보자.

공상과학 영화를 보면 문명이 고도로 발달하고 그로인해 매우 불평등하고 극단적인 사회가 그려지고 있다. 문영의 혜택으로 발전된 지역에 사는 집단과 그로부터 소외된 지역의 많은 사람들 간의 갈등을 보게 된다.

이러한 불평등은 현재 기준으로 보아도 어쩌면 당연할지 모른다. 현재 불평등한 사회가 자본으로 기술을 사들이고 이로 인해 획득한 부와 권력을 쥔 사람들에 의해 가속하지 않을까하는 상상 때문에 대부분 미래를 그리는 영화에서는 과학문명으로 인한 진보된 사회 외에는 대체적으로 디스토피아(Dystopia) 사회로 그려진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아직 미래의 대안을 찾지 못했거나 긍정적 변화에 자신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클라우스 슈밥(Klaus Schwab)은 자신의 저서 ‘제 4차 산업혁명에서’ “신기술의 발전과 수용을 둘러싼 엄청난 불확실성 때문에 제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변화가 어떤 방식으로 전개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렇지만 과학기술의 복잡성과 여러 분야에 걸친 상호연계성 면에서는 정·재계 및 학계, 시민사회를 포함한 지구촌의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이 새로운 기류를 보다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서로 협력할 의무가 있음을 시사한다”고 밝힌 바 있다.

결국 4차 산업혁명은 기술 진보만이 아닌 사회, 정치, 문화 등 모든 분야 함께 어우러져 진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도 서구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기술만 변화된 것이 아닌 사회 전반에 걸쳐 변화를 동반했다. 또한 기술의 혁신은 단지 기술에 한정하는 것이 아닌 이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쳐왔고, 서로 영향을 주면서 변화됐다. 이는 한국사회의 급속한 변화를 보아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일 일 것이다.

그렇기에 현재 우리는 이미 기술변화에 따른 급격한 변화의 전조 현상을 이미 겪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에게 4차산업혁명에서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대량실업과 양극화문제는 이미 현재의 문제이기도 하며, 지금부터 해결해야 하는 당면과제이기도 하다.

4차산업혁명을 이야기하는 이유

최근 4차산업혁명에 대한 관심은 기술 분야 종사자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급속히 확산되며, 기업에서는 4차산업혁명을 선도한다는 홍보성 문구가 도배질을 하고 있다. 여기에 각종 매체에서도 4차산업혁명 시대를 대처하는 방법을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전달하고 있다.

그런데 뭔가 익숙한 데자뷰 같지 않나? 현재 들끓는 4차산업혁명이 1980년대 엘빈 토플러의 ‘제3의물결’로 한국의 정보화시대 서막을 열었던 시기와도 너무나 많이 닮아 있다. 사실 한국사회는 과거 정보화시대 의제(Agenda)를 충실히 실행하며 성공한 경험이 있어서인지 4차산업 혁명이란 용어에 열광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과거 ‘제3의물결’에서 정보혁명을 이루는 정보사회를 위해 미국에서는 정보고속도로를 구축하고, 한국에서는 초고속국가망을 정부에서 투자하면서 닷컴(.com) 기업들의 전성기를 이뤘다. 이는 오늘날 스마트폰으로 대표하는 모바일 기기산업의 발전에 전 세계에서 일정 부분 역할을 한 마중물이 됐다.

아젠다 선점을 통한 기술과 산업 성장 덕분에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정보산업을 하나의 산업 인프라를 구축하고 경제 생태계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아쉬운 것은 한국의 정보화시대를 통해 일부는 성장했지만, 본질적인 정보를 다루는 방식에 대한 성장을 제대로 이루어졌는지는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하드웨어의 성장은 이뤘지만 소프트웨어 성장은 이에 비해 한참 뒤떨어졌기 때문이다. 

바로 이 문제가 현재 한국의 기술 정체기를 맞고 있는 이유라고 보여 진다. 그러나 이 시점에 4차산업혁명이라는 용어가 독일에서 시작되며 국내에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확산됐다. 

관련 업계 전문가들은 독일에서 4차산업혁명이 국가적 전략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기술기반 산업 생태계를 북미지역, 특히 미국에 선점 당했기 때문으로 진단하고 있다. 여기에 인구통계학적 측면에서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는 독일과 같은 산업국가들은 제조경쟁력을 유지가 필요한 상황에서 스마트 팩토리는 제조업을 지키는 장기적 국가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4차산업 혁명을 요구하는 기업과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다.

그러나, 기업과 달리 국가는 자동화기술의 급격한 발전으로 인한 직업소멸과 사회적 불평등 심화문제는 국가시스템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로,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장기적으로는 기업에도 구매력감소로 영향을 미친다. 아니 현재 당면한 문제이고 진행 중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인구감소 문제와 빈익빈 부익부는 시장경제와 소비시장에도 어려운 과제를 준다. 세계 거대 기업과 경제 엘리트들의 사교 파티라고 비판을 받고 있는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포럼에서 조차 노동-기업, 성장-분배가 병행돼야 한다는 주제가 2015년 이후 대두되고 있다.

기득권 경제 집단의 인식변화 움직임은 의미가 있다. 시민사회에서도 이와 관련된 생태계 논의가 활발해져야 한다. 결국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사회적 흐름 변화에 따라서 사회와 경제구성원들의 인식 변화가 요구된다.

모든 것이 생존의 문제 이지만, 우리가 탐욕을 어떻게 잘 다스리는가에 따라서 기술이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이룰 수 있게 한다. 특히, 요즘은 기술 변화와 함께 더불어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우리의 인식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강렬해지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이러한 모든 긍정적이고 급진적인 변화를 우리는 혁명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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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TED. Rainer Strack

4차 산업 혁명은 누구를 위한 프로파간다(Propaganda)인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용어의 정의는 의도하던 의도하지 않던 어떤 목적성을 가지게 된다. 4차 산업 혁명은 유독 인구 고령화 문제로 노동력의 심각한 상실을 가져올 국가의 대안이 되고 있다. 스마트 팩토리(Smart Factory) 역시 자동화 시설을 갖추기 위해서는 대기업이 아니고서는 엄두를 내기 힘들다.

결국 4차산업혁명이라는 명제 아래 기존 소수 대기업 집단의 혜택으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국내 산업 구조를 보면 빈익빈 부익부가 심화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4차산업혁명이 새로운 일자리 창출에 있어 사람이 고려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지난 대선 토론에서 대선 주자 간 토론에서 4차산업혁명에 대한 한 후보의 공약에는 기술만 있고 사람이 빠져있다는 지적에 많은 국민들이 공감했다. 이는 기술과 산업이 국가 경쟁력을 가져오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를 대부분 알고 있다는 이야기다. 

사실 두 사람의 토론과 방향성은 모두 맞다. 결국 4차산업 혁명은 작은 범위에서는 빠른 변화속에 기존 일자리는 사라지고 다른 일자리로 대치되는 현상이다. 문제는 우리가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속도보다 기술은 빠르게 진보하고 있다는 것이고, 빠른 변화를 촉진해 새로운 직업을 만들어 가야함과 동시에 빠른 변혁기에 사람들은 실업의 고통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 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급격한 변화 현상을 리트머스 시험지처럼 볼 수 있던 분야가 정보통신 분야다. 과거 관련 산업에서 통신사업이 독보적인 위치를 선점하고 있을 때 여러 통신사가 경쟁하고, 심지어 통신시장이 해외 개방된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항상 긴장된 변화 속에 있어 왔다. 항상 반복되는 일이지만 통신회사에서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고, 새로운 서비스로 전환은 자본과 사람들이 투입되는 일종의 모험이기도 했다. 현재는 5G가 화두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도 한 때 통신 표준의 주도권을 잡으려 하던 시절이 있었다.

ATM방식 프로토콜을 통한 초고속국가망을 만든 것은 독자적인 기술 모델을 갖춘다는 측면에서 획기적이었지만 확산성이 떨어졌다. CDMA 및 Wibro를 통한 모바일방식을 추진하면서도, 관련 표준을 기반으로 하는 교환기를 글로벌 시장에 확산하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분야에 시행착오와 성공 경험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이 분야의 주도권은 미국과 중국이 가지고 있다.

한국의 통신사들은 자체개발 교환장비를 적용하기보다는 해외의 덤핑장비와 글로벌 기업의 전략에 따른 테스트베드가 되었다. 우리가 이룩한 IT강국의 이면에는 우리의 기술보다는 외산 교환기, 외산 서버, 외산 데이터베이스 등 해외 IT생태계의 소비시장으로서 역할이 컸다는 이야기다.

고속 인터넷 시절 이전 패킷망서비스 시절에 한국통신 하이텔의 주 전산서버는 MOAM이라고 하는 장비가 있다. 이 장비를 운영하던 운용자들은 스스로 필요한 기능을 개발했고, 전자통신연구소(ETRI)와 새로운 장비 개발에도 참여했다. 이렇게 만든 PC통신 서비스가 01410서비스 였다. 01410은 국산 대형 서버로 구성된 서비스였다. 물론 서비스를 운영하는 운영자 입장에서는 잦은 고장 등 불편했지만, 철거하면서는 애증이 교차하던 기억이 난다. 즉, 우리의 기술이 주도권을 잃어가는 느낌이었다.

왜 우리의 완성도를 높이고 혁신적 통신 서비스를 세계 속에 제시하지 못했을까?

글로벌 장비 벤더(Vendor)의 넓은 세계 시장과 비교도 안 되는 국내시장의 경험으로는 역부족일 수 있지만, 우리 통신기업 및 정부의 책임도 있다. 생산성 측면에서는 외산장비를 협상을 잘해서 도입하는 것이 저렴하고 효율적이다. 그러나, 이렇게 도입한 외산장비를 활용하는데 익숙해지면서 장기적으로는 우리 스스로 혁신을 결정하지 못하게 됐다. 결국 우리는 글로벌 벤더의 플랫폼에 흡수된 것이지 새로운 흐름을 주도하지 못했다. 심지어 우리가 해외에 IT인프라를 수출을 한다고 해도 상당부분을 외산장비로 채워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지나간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결국 우리가 4차산업혁명에 어떻게 대처할까라는 질문에 대해 과거와 동일한 경험과 실수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우려된다.

4차산업혁명의 화두를 던진 독일의 경우 페스토(FESTO)와 같은 자동화 기업은 매우 상징성 있는 기업이다. 페스토가 중국 등 제조산업이 활발한 국가에 진출하고 있듯이, 인더스트리얼(Industrial) 4.0을 내세운 독일기업들의 경우 글로벌 생태계를 선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 역시 산업생태계를 만들어 가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 지금은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 다양하고 변화된 소프트웨어 능력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구글 같은 거대 소프트웨어 기업조차도 오픈소스 전략으로 자신들과 협력관계 개발자들을 모으고 있고, 파이썬 개발자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사람이 중요한 시대다. 사람이 중요하기에 글로벌 기업들은 개발자에 대한 가치를 인정해주고 있다. 상대적으로 개발자에 대한 처우가 열악한 한국의 개발자들이 해외기업 취업사례도 많아지고 있다. 기술과 산업 생태계는 결국 사람들의 직업과 밀접하다.  많은 사람들이 변화된 산업 생태계에 편입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 

결국 우리가 목적하는 4차산업혁명에 중요가치의 중심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기업이 궁극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도 현재의 단기적 성과보다는 사람과 산업을 성장시키는 생태계를 만들고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술자들을 존중하고 동기부여가 되는 환경이 필요하다.

[김철회 KT 차장,  space.context@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