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항해용 지도의 면적 왜곡 지적… "세계관 정립 영향" vs "이념적 과격 행위" 팽팽

[IT News=김한비 기자] 유엔(UN) 총회가 500년 넘게 세계지도의 표준처럼 사용되어 온 '메르카토르 도법(Mercator projection)' 대신, 실제 대륙의 면적을 보다 정확하게 반영하는 '이퀄 어스 도법(Equal Earth projection)'의 사용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가결했다.
유엔 총회는 지난 2026년 9월 4일(현지시간) 열린 본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결의안을 표결에 부쳐 찬성 164표, 반대 1표, 기권 6표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승인했다고 발표했다.
■ 500년 묵은 '메르카토르'의 한계… "아프리카 왜곡 상징화"
1569년 게라르두스 메르카토르가 발명한 메르카토르 도법은 경선과 위선이 직각으로 만나는 '정각 원통 도법'이다. 지도상 두 지점을 잇는 직선이 일정한 방위각을 유지해 지난 수세기 동안 선박 항해의 필수 지도로 활용되어 왔다.
그러나 메르카토르 도법은 적도에서 멀어져 양 극지방으로 갈수록 면적이 크게 확대되어 왜곡되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대표적인 예로 면적이 약 216만 ㎢인 그린란드는 실제로는 약 3,040만 ㎢인 아프리카 대륙의 14분의 1 크기에 불과하지만, 메르카토르 지도상에서는 아프리카와 거의 비슷한 크기로 묘사된다.
이번 결의안을 주도적으로 발의한 서아프리카의 토고 공화국은 메르카토르 도법이 "아프리카 대륙을 상징적으로 왜곡 및 상쇄시켜 왜곡된 세계관을 고착화했다"고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왔다. 토고 측은 2018년 새롭게 개발된 '이퀄 어스 도법'이 지도상 모든 지역의 면적 비율을 일정하게 유지한다는 점을 들어 이를 새로운 표준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로베르 뒤세(Robert Dussey) 토고 외교부 장관은 "지도는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형성하는 기준"이라며 "지도는 교육의 방향을 제시하고 집단적 인식을 결정짓는다"고 강조했다. 다만 그는 "이번 조치가 메르카토르 도법의 역사적·항해적 유용성을 부정하거나 특정 도법만을 강요하려는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 미국 "과격한 이념적 계획" 반발… 우크라이나는 국경 표기 우려로 기권
결의안은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되었으나 표결 과정에서 강한 반대와 신중론도 제기되었다.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진 미국은 "이러한 구상은 과격한 이념적 프로젝트의 일환"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기권표를 던진 국가에는 에스토니아, 조지아, 리투아니아, 몰도바, 세르비아, 우크라이나 등 6개국이 포함됐다. 특히 우크라이나는 역사적으로 왜곡된 아프리카 등의 대륙 면적을 바로잡으려는 취지에는 동의하면서도, 이퀄 어스 도법이 우크라이나의 영토 및 국경을 묘사하는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며 기권했다.
유럽연합(EU)은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졌으나 우크라이나와 유사한 우려를 표명했다. 아일랜드 대표는 EU를 대표해 발언하며 "이 조치는 오직 육지의 상대적 크기 비교에만 적용될 뿐, 각국의 주권이나 영토적 지위, 국제적으로 인정된 국경선과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한편 장노엘 바로(Jean-Noël Barrot) 프랑스 외교부 장관은 프랑스 정부가 향후 메르카토르 도법의 사용을 중단하고 이퀄 어스 도법을 적극 수용할 계획임을 공식 표명했다.
■ UN "법적 강제력은 없어… 완전한 평면 지도는 불가능“
유엔은 이번 결의안이 회원국에 강력한 법적 강제력을 부여하거나 기존 메르카토르 지도를 전면 금지하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유엔 관계자는 "구형인 지구의 곡면을 평면에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는 도법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모든 도법은 면적, 형태, 거리, 방향 중 일부를 희생해야 하며 각각 목적에 맞게 쓰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유엔의 결의로 향후 교육 현장과 공공 기관, 국제기구 문서에서 실제 대륙 크기를 반영한 '이퀄 어스' 지도의 도입이 한층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 한국에 미치는 영향
이번 유엔 결의는 한국 사회 전반에도 다각적인 변화를 가져올 전망이다.
기존 세계 표준처럼 사용되어 온 메르카토르 도법은 적도에서 멀어질수록 면적이 크게 확대되는 특성 때문에 고위도에 위치한 유럽, 러시아, 북미 대륙을 실제보다 비대하게 묘사해 왔다. 이에 비해 북위 33°~43° 사이의 중위도에 위치한 한반도는 상대적으로 영토가 작아 보이는 시각적 착시 현상을 겪어야 했다.
이퀄 어스 도법이 본격 도입되면 고위도 국가들의 면적이 실제 비율에 맞춰 조정되므로, 한반도와 아시아, 아프리카 대륙의 상대적 크기가 distortion 없이 직관적으로 전달된다. 이는 국민들이 한반도 및 주변국의 실제 공간 규모를 보다 균형 잡힌 시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교육 현장에서는 초·중·고교 사회 및 지리 교과서는 이미 로빈슨(Robinson)이나 윈켈 트리펠(Winkel Tripel) 도법 등 면적 왜곡이 비교적 적은 지도를 병행하여 활용해 왔다. 그러나 이번 UN 결의를 계기로 교과서 수록용 표준 세계지도와 학교 게시용 지도에 '이퀄 어스' 도법의 채택이 대폭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공교육 현장에서는 단순한 지도 교체를 넘어서, '지도 도법에 투영된 세계관과 시각의 왜곡'을 주제로 한 비판적 탐구 학습과 글로벌 시민 교육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결의는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글로벌 중추국가(Global Pivotal State)' 외교 비전과도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서구 중심의 면적 왜곡을 바로잡고자 하는 아프리카, 남미, 동남아시아 등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국가들의 목소리에 적극 호응함으로써, 한국은 다자 외교 무대에서 명분과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이는 최근 개최된 한-아프리카 정상회의 등 개도국과의 외교 지평을 넓히는 과정에서 정서적 유대감을 공고히 하고 외교적 신뢰를 높이는 유용한 자산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산업 측면에서는 웹 서비스 영역과 통계 분석 영역 간의 역할 분담이 일어날 전망이다. 네이버 지도, 카카오맵, 구글 맵 등 대중적인 이동 및 항법 서비스는 방향각과 형태 보존이 필수적인 만큼 당분간 기존 '웹 메르카토르' 방식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 인구 밀도, 기후변화, 경제 지표, 자원 분포 등 세계 통계 데이터를 시각화하는 언론 인포그래픽, 뉴미디어, 연구 기관의 공공 지리정보 시스템(GIS) 분석 및 정부 공공 데이터 분야에서는 실제 면적 비율을 정합하게 반영하는 이퀄 어스 도법 도입이 급속도로 진행될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 UN 결의안은 지도 도법의 기술적 교체를 넘어, 지난 수세기 동안 고착화된 공간적 선입견을 해소하고 평등한 세계관을 정립하려는 다자주의적 노력의 일환이다. 한국은 이를 지리 교육의 고도화, 국가 통계 시각화의 표준화, 그리고 글로벌 사우스 외교의 신뢰 구축 기회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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