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은 어떻게 강국이 되었을까?…”사회적 자본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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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은 1948년 5월 8일 독립국가로 선언된 나라이다. 모세의 지도로 이집트의 노예(아포리아) 상태에서 탈출한 지 근 2000년간 디아스포라(이산)를 경험하고 2000년 만에 가나안과 팔레스타인 땅에 이스라엘을 건국했다. 

서기 7세기 이래 자신이 지배했던 영토이던 팔레스타인 땅에서 쫓겨난 아랍 무슬림을 쫒아내고 건국한 것이어서 건국 후에도 이들과 수 없는 전쟁을 치러야 했다. 

이스라엘은 예상을 뒤엎고 건국 후 3차에 걸친 전쟁과 그 이후의 크고 작은 전쟁에서 승리했다. 승리할 때마다 더 강한 나라가 되어 결국 성서에서 약속받은 땅을 자신의 나라로 인정받았다. 

유대인들이 노예 상태에서의 탈출과 디아스포라, 20세기 홀로코스트(나치독일의 유대인 학살)의 시련을 거쳐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건국하는 과정은 거대한 서사이다.

이스라엘은 경제 정치적으로 최강국이다. 특히 로비 단체를 앞세워 미국의 정책을 좌지우지한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은 유대인들의 아바타라고 생각한다. 노벨상뿐 아니라 초연결 디지털 혁명을 이끌 수 있는 의료, 제약, 전자 등 분야에서도 이미 선도국이 되었다. 

2018년 1인당 GDP는 4만 2천불 수준으로 일본이나 이탈리아보다 앞서 있고 순위에서는 영국과 비슷하다. 석유로 부국이 된 아랍에미리트나 쿠웨이트를 뛰어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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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존자원도 변변치 못한 나라가 자원대국인 아랍국가들을 뛰어넘는 경제 정치적 강국이 될 수 있었을까?

이들이 성공적으로 동원한 사회적 자본의 힘에 기인한 것으로 본다.

사회적 자본은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어떤 참여자(node)와 좋은 관계를 유지할 때 이들이 가진 자본을 자신의 자본처럼 빌려 쓸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한다. 

이념적으로 100명으로 구성된 네트워크의 모든 참여자들과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면 이들이 100명이 가진 총 자신이 나의 개인적 자산으로 동원될 가능성을 말한다. 

초연결사회의 핵심은 모든 사람이 다 상호의존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연결된 이들로부터 성공을 위해 얼마만큼의 자본을 빌려 쓸 수 있는지의 개연성에 따라 성공의 크기가 결정된다. 

초연결사회의 플랫폼 비즈니스의 성공은 이런 사회적 자본을 동원할 수 있는 네트워크 효과에 의해서 결정된다. 

초연결디지털 사회에서는 아무리 기술력이 뛰어나도 이런 네트워크 효과를 동원할 수 있을 정도의 신뢰와 명성을 쌓지 못한다면 결국 자신만의 플랫폼을 만들 수 없어서 도태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설사 뛰어난 기술로 플랫폼을 만들었다 해도 참여자들이 이 플랫폼을 설계한 주최를 믿지 못한다면 아무도 참여하지 않아서 결국 이들이 설계한 플랫폼은 망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 된다.

이스라엘이 사회적 자본을 동원해서 나라를 건설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지금까지 사회적 자본을 선구적으로 연구해온 퍼트남(Putnam), 콜만(Coleman), 브르디외(Bourdieu), 푸꾸야마(Fukuyama) 등 사회적 자본을 연구해온 학자들이 놓치고 있는 점이 있다.

이스라엘은 디아스포라를 거치면서 유대인들을 세계 각국 방방곡곡에 뿌리를 내려 정착했다. 사실 성서의 명령에 따라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를 건국해야 한다는 공동의 운명에 대해서 각성하기 전까지는 이들을 감자알들처럼 서로 교류가 없이 고립되어 살고 있었다. 

이들 고립된 유대인들의 네트워크를 복원해서 사회적 자본을 동원하기 시작한 것은 자신들은 성서의 명령에 따라 가아안 땅에 나라를 세울 수밖에 없는 운명을 공유한 사람들이라는 각성 때문이다. 

결국 이들 잠재적 사회적 자본이 자본으로 동원하는 계기는 이들이 각성한 공동 운명에 대한 정체성이었다. 이 정체성에 대한 각성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건설될 수가 없었고 세 차례의 전쟁에서도 이길 수도 없었다.

사회적 자본의 성공은 두 가지 요소에 의해서 결정된다.

하나는 유대인들처럼 세계 각국에 다양한 뿌리를 내려서 네트워크의 다양성에 대한 잠재력을 가졌는지 문제이다. 다른 하나는 이들이 유대인들 경우처럼 공동운명체라는 공유할 수 있는 정체성이 있는지의 문제이다. 

사회적 자본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학자들이 많이 놓치고 있는 점이 바로 두 번째 요인이다. 두 번째 요인은 사회적 자본이 실제로 동원되는 결정적 촉매 역할을 수행한다. 다양한 네트워크가 필요조건이라면 정체성에 대한 공유는 사회적 자본의 성공적 동원을 위한 충분조건이다.

요즈음 대부분의 글로벌 회사들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이나 공유가치창출(CSV, Creating Shared Value), 기업 시민운동에 투자하는 이유도 자신들의 플랫폼에 투자하거나 자본을 동원해줘도 자신들이 참여자들의 공동 운명을 위해 노력하는 정체성에 헌신한다는 것을 염두에 둔 것이다.

출처: UPI뉴스 정병혁 기자

대한민국의 경우는 어떨까?

대한민국은 유대인처럼 2천년의 역사를 걸쳐 디아스포라를 경험한 적이 없어서 글로벌하게 동원할 수 있는 다양한 사회적 자본의 기반이 미약하다. 일제의 통치를 탈출해 디아스포라를 경험한 45년 기간이란 이스라엘처럼 장기간 글로벌한 네트워크의 뿌리를 만들 수 있는 기간은 아니었다. 

또 다른 문제는 45년간 일본 만주 중국, 소련, 미국으로 흩어져 살던 한국인들이 해방을 위해 힘을 결집한 적은 있지만 해방을 달성한 후 새로운 시대에 맞는 정체성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공유된 정체성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니 오히려 좌익과 우익으로 나뉘어 오랫동안 국회조차도 열지 못하는 국론분열의 주범으로 작동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대한민국의 정치가들은 외세의 수 없는 침략으로 국내적으로 다양성이 상당해 내재화되어 있음에도 이를 감추고 은폐하기 위해서 단일민족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국가의 어느 지도자를 보아도 대한민국이 글로벌 국가로서 신성한 책무를 가진 공동의 운명체임을 부각시키는 철학과 이념이 부재한 상태이다. 이런 글로벌 시민국가로서의 사명이 부재하니 정치인들이 태업도 불사해가며 자신의 밥그릇 챙기는 일에 국가를 볼모로 이용하는 일이 일상으로 용인되고 있다.

사정은 기업도 마찬가지다. 한 기업의 참여 구성원들을 결집시키는 사명과 목적이 부재하니 회사가 혈연, 학벌, 지연, 성, 세대 등의 정치세력들에 의해서 갈기갈기 찢겨 있다. 이런 다양한 네트워크를 앞장서서 거부하는 세력이 회사의 기득권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회사가 번성을 위해 사회적 자본을 동원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이스라엘과 달리 세계 방방곡곡으로 흩어져 외재화된 사회적 자본이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지금 우리가 가진 다양성이라도 존중해서 다양한 인재들을 발굴하고 또한 이들을 결집시켜주는 사명과 목적을 세우는 일이 급선무가 되었다. 

초연결 디지털 시대에 이런 사회적 자본을 동원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나라나 기업이 번성을 누린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힘든 일이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변화가 상수가 된 초연결디지털 시대에 우리는 이스라엘이 사회적 자본을 어떻게 성공적으로 동원했는지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이스라엘이란 말은 하나님과 논쟁에서도 이긴 사람들이란 뜻이 담겨 있다. 

자기 삶의 목적에 대한 신앙심과 헌신이 그만큼 신실하다는 의미이다. 목적과 사명이 없는 정치인들에게 초연결시대를 맡긴다는 것은 불운 중 불운이 될 것이다.

 

 

 

글: 윤정구 교수(이화여대 경영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