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인문여행] 길상사(吉祥寺)와 기생 그리고 시인

- 이루지 못한 사랑과 무소유(無所有)

삼선교 사거리에서 성북동 방향으로 간송미술관 못미쳐 성북초등학교 우측길을 오르면 길상사가 있다. 서정주시인의 ‘국화 옆에서’가 생각나는 고즈넉한 절집이다

이곳은 일제 때 청암장이라는 별장이었는데 1951년 김영한이라는 여인이 인수해 대원각이라는 이름의 요정(料亭), 소위 말하는 기생집으로 바뀌게 된다. 

김영한은 일제 때 기생들의 조합이었던 ‘조선권번’에서 활동했던 기생으로 전한다. 

그녀는 술과 음기(陰氣)를 팔며 대원각을 당시 선운각, 삼청각과 함께 정·재계인물들 중에서도 하이클라스만 드나드는 국내 3대 요정으로 성장시킨다. 그후 3공화국, 5공화국을 지나며 밀실정치의 대표장소로 세상에 알려졌다. 
 
하지만 그녀는 90년대 중반 갑작스럽게 요정 운영을 접고 대원각을 사찰로 개조했다. 그리고 그 건물을 ‘무소유(無所有)’의 저자로 유명한 법정 스님을 통해 부처님에게 시주한다. 

요정이었던 대원각을 사찰로 리모델링하는 과정에서 나무기둥에 고기와 술냄새가 하도 진하게 배어있어, 이를 제거하려고 인부들이 기둥을 깍아도 깍아도 냄새가 없어지지 않아 무척 애를 먹었다는 일화가 있다. 그만큼 대원각에서는 밤마다 고기 굽는 냄새와 술 냄새가 끊이지 않았던 것으로 전한다.

사찰을 헌납 받은 법정 스님은 김영한에게 길상화(吉祥花)라는 법명을 주고 사찰의 이름도 이 법명과 같이 길상사(吉祥寺)로 불렀다. 

불교에서 얘기하는 진흙 속에서 피어난 연꽃 처럼, 요정은 사찰이 되고 기생은 보살이 된 것이다.

■ 백석(白石)과 자야(子夜)…그리고 길상사

그녀가 톱클래스 요정이었던 대원각을 부처님에게 헌납한 이유에 대해, 법정 스님의 무소유에 감복해 모든 것을 내려놓기 위해서였다고 전해지지만 혹자는 끝내 이루지 못한 그녀의 사랑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인다. 

그녀는 시·서·화·무(詩書畵舞) 모두에 능한데다 일본유학까지 다녀온 인재로 당시 엄청난 인기를 누렸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한 남자와만, 그것도 이루지 못할 사랑을 하게 된다. 그 남자는 김영한에게 ‘자야(子夜’)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자야는 자시(子時)의 밤, 즉 칠흙같이 어두운 밤을 이른다.

그 남자가 바로 우리 문학계의 큰 별 백석(白石) 시인이다. 백석은 평안도 출신으로 본명은 백기행(白夔行)이고 19살에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후 시인의 길을 걷게 된다. 

두 남녀는 백석이 교편을 잡고 있었던 영생고등보통학교 선생들과의 회식자리에서 처음 만난 후 사랑에 빠졌다. 백석의 집안에서는 김영한이 기생출신이라는 것 때문에 두 사람의 만남을 완강하게 반대했고 두 사람은 백석의 고향인 평북 정주와 서울을 오가며 외줄을 타 듯 사랑을 이어갔다. 

결국 백석의 부모는 둘을 떼어놓기 위해 백석을 다른 여자와 결혼시키고 백석은 결혼식날 밤 집을 빠져나와 자야에게 함께 만주로 가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자야는 자신이 백석의 짐이 될까 우려해 만주행을 거절하고 백석만 만주로 떠났다. 그후 남북이 분단되고 백석은 다시는 돌아 오지 못했다. 이후 자야는 평생을 홀로 지냈다. 

▲ 백석 백기행과 자야 김영한

확인되진 않았지만 백석은 북한에서 1995년 경 84세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김영한이 대원각을 불단에 시주한 것도 이 무렵이어서 혹시 백석의 죽음과 그녀의 시주가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닌 가 하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그녀는 1999년 겨울, 84세로 평생 그리던 백석을 향해 혼백으로 떠나고 만다. 사망한 나이도 두 사람이 일치한다.

길상사 헌납 당시 한 기자가 그때 시가로 천 억원이나 되는 대원각이 아깝지 않느냐고 그녀에게 질문을 했다.

그녀는 “천 억원이라는 돈은 백석의 시 한 줄만도 못하다” 고 대답했다 한다. 

백석은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라는 시를 남겼는데, 자야와의 이루지 못한 사랑을 괴로워하는 자신의 처지를 얘기한 것이라는 해석이 있다. 

지금도 이 시를 읽으면 늘 자야와 백석과 길상사가 오버랩되곤 한다.

이루지 못했던 그들의 사랑과 모든 것을 훌훌 내려놨던 그녀의 무소유(無所有)를 생각해 보곤 한다.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가난한 내가 /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 눈은 푹푹 날리고 /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 나탸샤와 나는 /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 눈은 푹푹 나리고 /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 나탸샤가 아니 올 리 없다 /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유태준 작가 (lhpd123456@hanmail.net) : 미술작가, 예총산하 한국미협 정회원으로 한국학 연구와 작품활동]